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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님 작성일15-01-29 17:03 조회4,0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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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배회하던 시간, 나눔으로 채웁니다

입력 : 2015.01.24 03:01
 

[노숙인 봉사 모임 '오이지' 3년째 꾸준히 활동 펼쳐]

연탄배달·장애아 사진찍기… 봉사 대상·종류 가리지 않아

-노숙인들 "자활 의지 생겨"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인사 들으면 가슴이 뭉클… 뭐든 할 수 있단 용기 얻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주민센터 근처엔 330㎡(100평)짜리 텃밭이 있다. 이진성(61·가명)씨 등 30여명이 기른 상추, 부추, 방울토마토, 배추, 고구마, 대파는 동네 독거노인들과 미혼모들의 밥상에 오른다. 이웃이 먹을 것을 위해 농부처럼 땀 흘리는 이들은 동네의 명물이다. 지난해 가을 이씨가 이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를 들고 찾아갔을 때 한 할머니는 그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내 아들도 어미인 나를 찾지 않는데…정말 고마우이." 이씨는 "부모님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고 했다.

윤성호(61·가명)씨는 틈만 나면 영등포 지역의 청소년수련관을 찾는다. 광화문에서 외국인을 찍어 주는 공공 근로를 하며 마련한 니콘 카메라에 지적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는다. "웃어봐요"라고 말해도 제 표정을 짓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윤씨는 "행동이 더딘 아이들이 예뻐 보이는 순간을 사진에 '딱' 담아주면 부모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외로운 노인들을 찾아 영정 사진도 찍어드린다. 윤씨는 "그 분들이 기뻐하는 걸 보면 '아, 내가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구나' '내 삶은 아직 끝난 게 아니구나' 하는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거리를 배회하던 시간, 나눔으로 채웁니다
이들은 농부도 사진사도 아니다. 이씨는 10년차, 윤씨는 4년차 노숙인이다. 두 사람은 전국 유일의 노숙인 봉사모임 '오이지' 회원이다. '오늘도, 이렇게, 지금처럼 열심히'라는 뜻이 담긴 '오이지'의 회원은 모두 영등포의 노숙인 자활시설 '보현의 집' 식구들이다. 이곳에는 파산, 이혼, 실직, 가정불화 등으로 노숙자가 돼 영등포역을 떠돌다 들어온 160여명의 남성들이 모여있다. 오이지는 그중에서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강한 30여명으로 이뤄져있다. 2012년 6월부터 봉사를 시작해 지난해에만 총 스물 한 번의 각종 봉사활동을 펼쳤다. '연탄 나르기' '텃밭 가꿔 이웃 돕기' '노인복지시설 배식봉사' '장애인 동반 나들이' 등 땀흘리는 일부터 '어르신 정서 지원' '장애 아동 사진 찍어주기' 등 마음 쓰는 일까지 가리지 않는다.

오이지의 도움을 받는 주민들은 이들이 노숙인 출신이란 걸 알고 깜짝 놀라곤 한다. 윤씨가 찍은 아들의 사진을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다는 차수연(40)씨는 "지적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의 자연스러운 웃음은 프로들도 찍기 힘들어 하는데 그걸 찍은 분이 노숙인이라니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차씨는 "어려운 분들이 하는 봉사라 더욱 값지다"라고 했다.

'노숙자의 사회봉사'란 아이디어를 낸 건 영등포 자원봉사센터 김찬숙(54) 센터장이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경험을 통해 무너진 자존감을 되살리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관계망(網)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처음 노숙인들은 그저 하라니까 할 뿐이었다. 한때 '이렇게 내 생(生)이 끝나는구나'라는 절망감에 한강 다리 위를 서성거리던 노숙인들에게 봉사는 무리인 것만 같았다.

그들을 변화시킨 건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였다. 이진성씨는 지난해 노인복지시설에서 배식봉사를 했다. 한 어르신이 "선생님, 잘 먹었습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이씨는 "어제까지만 해도 역 주위를 서성이던 노숙인이었던 내가 오늘은 선생님이 됐다. 새로운 삶의 의미가 온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 연말 영등포경찰서 인근 주택가에서 연탄을 배달한 한 노숙인도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들으며 "고맙다는 말을 몇 년 만에 들어봤는지 모르겠다"며 미소지었다. 오이지 회원들은 그래서 "봉사활동은 남을 돕는 게 아니라 나를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 센터장은 "노숙인 분들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는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할 때 뿌듯하다"고 했다.

올해 오이지는 불우 이웃들의 집을 고쳐주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다들 일용직 건설노동 경험이 있어서 집 고쳐주는 일을 정말 하고싶어 했다. 봉사를 하며 자활 의지를 다진 오이지 회원들 몇 명은 올해 홀로 서기에 나선다. 이진성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노동을 하며 저축한 돈으로 구로구 개봉동에 방 2개짜리 임대주택을 얻어 다음 달 사회와 다시 마주친다. 2005년 길거리로 나선 지 10년 만이다. 이씨는 "나가서 부딪쳐 보려고 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용기로 부딪쳐 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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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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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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